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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공 최영장군

고려말기 명장이며 청빈과 충절의 표상인 최영장군이 있다. 장군은 1316년 홍북읍 노은리에서 태어나셨으며 어려서부터 집 뒤에 위치한 닭제산과 용봉산 그리고 금마면 철마산등지에서 무술을 연마하였다고 전해진다 "내 평생 탐욕을 가졌으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로되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 않으리라”.던 장군의 유언대로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붉은 무덤이어서 “최씨 앉았던 자리엔 풀도 안난다”.는 속설을 낳기도 했을 만큼 청빈한 장군의 한 일화를 볼 수 있다.

고려 후기의 학자로서 집현전태학사를 지낸 최유청의 5대손으로 명문에서 태어난 장군은 16세 때 사헌부 간관을 지냈던 그의 부친 원직으로부터 “너는 마땅히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유훈을 받은 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하였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늠름했으며 용력이 출중하여 문신 가문에 태어났으면서도 병서를 읽고 무술을 익히여 무장의 길을 걸었고, 공민왕 원년(1352)에 조일신의 역모를 진압하여 무명(武名)을 떨치기 시작했다. 장군은 나가면 반드시 이기는 상승장군이요, 들어오면 부정과 불의를 퇴치하는 강직한 재상이었다. 민족의 숙원이던 북진의 꿈이 무산되면서 마지막까지 고려왕조를 지키려다 순절한 충신이었던 장군은 수많은 설화속에서 숭앙되고 있다.

매죽헌 성삼문

사육신의 선봉이신 성삼문 선생께서 최영장군이 태어난 홍북읍 노은리에서 102년 뒤인 1418년에 태어나셨다. 선생께서는 143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웠으며 세종의 고명을 받아 어린 단종을 받들다 세조찬탈에 분개하고 단종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1456년에 돌아가셨다.

처형 직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고 한다.

“擊催人命/回頭日欲斜/黃泉無一店/今夜宿雖家”

“북소리는 사람의 목숨을 재촉한다
머리를 돌려보니 해는 기울려한다
황천에는 객점도 없다는데
오늘밤에는 누구의 집에서 머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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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북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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